희망찾아가는 길

사랑의 본질은 '쓰라린 기쁨, 달콤한 슬픔이랍니다' 부디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기를!

안성프리즘 | 기사입력 2019/08/12 [07:38]

희망찾아가는 길

사랑의 본질은 '쓰라린 기쁨, 달콤한 슬픔이랍니다' 부디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기를!

안성프리즘 | 입력 : 2019/08/12 [07:38]

독서 동호회의 한 회원이 지금은 희망을 찾아 가는 길입니다라고 하며 단톡방에 사진을 올려놓았다. 빛바랜 흑백사진이었다. 사진에는 낡은 옷차림의 두 여인이 희망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너럭바위 위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지금으로 부터 60년 전 어머니가 친구와 함께 망해암 올라가는 길가 바위에다 희망두 글자를 새기고 찍은 사진이란다. 망해암은 안양의 대림대학 뒤편 쪽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관악산 자락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한 봉우리 위에 제비집처럼 둥우리를 틀고 앉아 있는 절이다. 밑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아스라하고 멀리 서해 바다가 보인다하여 망해암(望海庵)이라 불리었다. 저녁 일몰이 장관이라 한다.

그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1960년대 당시 사람들이 품었던 희망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현제명 작사 작곡의 희망의 나라로란 동요를 열심히 부르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 희망의 나라로~“ 하며 나지막하게 불러보면 귓가에서 종소리가 딸랑거리며 흔들리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1960년대는 다들 헐벗고 가난한 시절이었다. 넘기기 힘든 보릿고개가 있었고 거리는 황폐했고, 산야는 헐벗었다. 그 당시 공동의 희망은 등 따습고 배불리 먹는 것,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였으리라. 희망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모두 희망을 노래했고 염원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고 열악한 교실에서 올챙이 같던 어린애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희망을 걸어 봤을까? 강한 염원과 희망으로 우리는 기적의 경제 성장을 일구었고 작금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절망하고 있을 때 비로소 희망은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는 역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에는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찾아 나섰지만, 어찌된 일인지 요즈음엔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희망이 실종된 것일까? 다들 먹고 살만 하니 희망을 걸 일이 없어서였을까. 혹은 예전에는 희망이라는 대상이 뚜렷하게 보였지만 요즈음엔 희망이란 대상이 하도 다양하여 정작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떤 희망 사항조차 이 땅에 남아있지 않아서였을까. IMF 시절,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어...“라는 말을 남기고 이민을 가 버린 어떤 친구의 씁쓸한 말 한마디가 여전히 귓전에 맴돈다.

 

그는 왜 갑자기 희망이란 말을 화두로 던졌을까? 그러고 보니 그 전날 우리들은 함께 문학 탐방을 하고 돌아왔다.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의 일대기를 그린 봉준이, 온다를 읽고 이광재 작가를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하여 전주에 다녀왔다. 주말의 전주 한옥마을 거리는 젊은이들과 외국인들로 가득 찼다. 한옥마을의 고즈넉함과 생기발랄한 젊은이들로 붐비는 거리는 묘한 이질적 생동감과 여흥을 주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더위 임에도 불구하고 예쁜 한복을 차려입고 거리를 누비는 모습이 낯설지 않고 친근했다. ‘오래된 미래를 표방하는 전주 한옥 마을은 과연 단순한 과거에로의 복귀나 추억의 장소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미래로 열려져 있는 젊은이들의 거리였다.

마당 한 곁에 깊은 우물이 있는 한옥 집에서 차와 음식을 시켜먹으며 이광재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봉준이, 온다는 이광재 작가가 오랜 기간 동안 전봉준의 발자취를 따라 답사하며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고증했던 사람들의 기록과 경험이 녹아 있는 책이다. 그의 말 속에는 전봉준에 대한 애정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확고한 진실성과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마치 구부려지고 뒤틀려졌으나 아주 단단한 육질을 내보이며 역사적 상상력 속에 자라나 화염같은 꽃을 피우는 오래된 배롱나무 같았다. ‘미완의 혁명’, 그래서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민중 역사의 첫 장을 그는 동학혁명에서 찾으려 했다.

누군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동기를 묻자, 그는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제가 목에 밧줄을 걸고 쓴 책입니다... 책을 쓰기 전 몇 년 동안은 방황의 시기였고 암울한 시절이었습니다. 글은 써지지 않고 생활은 궁핍하여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를 만날라치면 친구에게 내 차비와 술값을 준비하라 말하고 친구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 두 번이지 오래 하다 보니 이 세상이 지긋 지긋 해졌고 아무런 희망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죽어 버리려 마음을 먹고 캔 맥주 하나를 들고 동네 근처에 있는 절에 올라갔지요. 완산 화암사 인근에는 높은 절벽이 있어 떨어져 죽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첫째 날 그 절벽에 뻘뻘 기어 올라갔더니 웬 젊은 남녀가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날은 그냥 캔 맥주 하나를 마시고 내려 왔지요. 둘째 날에도 역시 캔 맥주 하나를 들고 암벽을 찾았지요. 캔 맥주를 마시면서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를 저울질하며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저 멀리 아스라한 절벽 밑에서 솔개 한 마리가 힘차게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더니 골짜기를 한 바퀴 돌고 이내 허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비상하는 생명의 약동. 눈물이 흐르고 이내 머뭇거리는 동안 술이 깨어 산을 내려왔습니다. 세 번째 날에도 역시 캔 맥주 하나를 달랑 들고 절벽을 찾았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멀리서 함성이 들리더군요. 분노하고 절규하는 민중들의 함성, 그리고 일제의 총칼 앞에 맥없이 쓰러져 갔던 민초들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래,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 비록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그 희망이 불씨처럼 꺼지지 않고 여지껏 이어져왔다는 것을 누군가는 말해야 해. 내가 써야만 해...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목에 밧줄을 매고 글을 썼습니다.”

자리가 숙연해졌다. 누군가가 그 때 캔 맥주가 아니고 소주병이었다면 절벽에서 살아 내려오지 못했을 걸요.” 하고 농담을 건네자 좌중은 비로소 웃음바다가 되었다.

 

희망이란 절망의 골짜기에서 솟구쳐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 같은 것이고,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돋아나는 새싹 같은 것이리라. 단테의 신곡에는 지옥문 입구에 이런 글씨가 쓰여 있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영원히 절망 속에서 사는 것,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그러니까 이 말은 곧 희망이 없는 세상은 지옥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는 판도라의 상자이야기가 있다.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고 상자 뚜껑을 열었더니 그 속에서 장차 인간이 겪게 될 가난, 질병, 고통, 노화 등 온갖 재앙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고, 마지막 상자 안에 남은 것은 '희망' 뿐이었다. 그 뒤로 인간들은 갖가지 불행에 시달리면서도 희망만은 고이고이 간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누구나 희망이 있으면 어떠한 고통이라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희망은 현재의 것이 아니라 미래에 도래하는 그 무엇이며 비전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현재에 닿아 있어야 한다. 희망은 지금 구체화된 염원이고 바램이다. 그 씨앗은 반드시 현재에 심겨져야만 한다. 그래서 내일 세상이 멸망할 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한 스피노자의 말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당신의 희망은 무엇인가?

 

- 에세이스트 장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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