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천변풍경

장정완 에세이 제 12편

장정완 | 기사입력 2020/02/17 [14:52]

카페 천변풍경

장정완 에세이 제 12편

장정완 | 입력 : 2020/02/17 [14:52]

 

  © 카페 천변풍경  


 얼마 전 친구가 카페를 열었다는 소식을 받아 개업식에 참석했다. 카페이름은 천변풍경’. 북한산보국문역의 정릉천변에 위치한 카페다. 화강암벽의 장대한 북한산 봉우리가 코앞에 우뚝하고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천변의 물길은 맑고 깨끗하다. 주변에 인가나 건물들이 없었던 옛날이라면 과히 비경이라 할 만 하다. 카페는 옛날 그대로의 허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뿐더러 뒤편 산언덕에 빼곡히 들어 찬 가옥들 또한 7,80년대의 정경 그대로 인지라,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정겨운 풍경이다. 건축을 전공한 친구는 한동안 소식이 뜸하더니 어느새 뚝딱 이런 카페를 차려 깜짝쇼를 하듯 지인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평소 커피를 좋아했던 부인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열심히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만들었다는 커피 맛을 음미하며 자못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평생 하던 일도 그만두고 은퇴할 나이에 과감히 이모작 인생을 설계하고 새로운 삶을 펼쳐나가는 부부의 모습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카페의 이름 천변풍경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川邊風景)’에서 따왔다. 상호가 좋아야 모름지기 장사가 잘 되는 법인데, ‘천변풍경이라는 이름은 레토르 풍을 지향하는 카페 분위기에 썩 잘 어울리다. 비록 집 앞에 흐르는 물이 청계천이 아니라 정릉천이지만 말이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박태원의 소설들, 일테면 <천변풍경>이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같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1930년대를 상상하며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다.

 

  © 1930년대 천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은 우리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 경성 풍경을 들여다보듯이, 당시의 도시 풍경과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천태만상으로 그려져 있다. 청계천이 흐르는 물가에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면서 잡담을 나누고 소식을 전파하며 입방아를 찧는 모습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화자의 세심한 관찰을 통해 천변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며 처해진 상황이 그려지고 삶의 애환이 펼쳐진다. 소설의 키워드는 곤경이다.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이 처한 곤경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낸다. 이러한 개인들이 처해진 상황은 상호적 인과성으로 엮어지면서 그 시대의 전체적 조망권을 부여한다. 여기에 소설의 묘미가 있다. 각자 인간에게 처해진 곤경은 그 인간의 운명에 작용하는 법인데, 아무 각성 없이 그 곤경에 빠져 침몰해가는 인간의 실상이 있는 반면 그 곤경을 어렵게 이겨나가는 모습을 대비하여 삶의 조건을 극복해나가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순박한 사람들이라도 삶의 변화와 작용에 따라 곤경에 처하게 마련이다. 그 곤경이란 시대적 변화에 따른 주변 상황이 인간 개인의 욕망과 맞물려 발생하는 사건들로 처해지는 위기이다. 당시 제일 우선하는 곤경이란 역시 궁핍이고 그 해결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군상들의 애처로움이 전반에 깔려 있다. 반면 사회적으로 팽창하는 자본주의적 환상과 욕구가 개인의 욕망 속에 팽배해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 시대였지만 체제의 억압이란 서민들에게는 멀리서 치는 천둥 번개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최소한 소설 속에는 그러한 속박과 억압체제는 감추어져 있다. 반면 누군가 금광을 발견하여 큰돈을 벌었다는 둥, 미두 시장의 거래로 한방에 일확천금을 벌었다는 둥, 어느 간척지가 항구로 변하는 바람에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들로 세상은 요동치고 있다.

 

시대가 이렇다보니 시골 사람들은 요행을 바라고 돈을 벌기 위해 꾸역꾸역 서울로 모여들고, 돈을 번 사람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잘난 체를 한다. 이 소설에는 여러 인물들이 출연하지만 대표적으로 두 사람을 꼽자면 민 주사와 금순이다. 그들은 이 소설을 통해 대비되는 운명의 두 갈래이자 소설 속에서 추구하는 인간 양상의 대척점이다.

민 주사는 제법 돈을 만진 사람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지만 애첩을 둔 게 화근이다.

이 애첩은 시쳇말로 여우라, 어떻게 하면 민 주사를 꼬드겨 돈을 뜯어낼까만 궁리 한다. 민 주사는 이 애첩이 자기 몰래 젊은 학생과 연애질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애첩의 농간에 거금을 들여 집까지 사주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출마하던 민의원 선거에서도 참패를 당하게 되니 그 많던 재산도 모두 탕진하고 결국 곤궁에 빠지게 된다.

 

 한편 순진한 금순이는 시골에서 남편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가출하였는데, 한 남자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고 꼬드김에 넘어가 여기까지 오게 된다. 그 남자는 금순이를 어디 술집이나 사창가에 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금순이는 오도 가데 못하고 천변의 한 여인숙에 버려지게 된다.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이웃 술집에 나가는 여인들이 그녀를 거둬들여 자신들 뒷바라지를 하게 한다. 금순이는 우연찮게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을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되면서 보다 안정된 삶을 꿈꾸게 된다.

 

  © 안성프리즘

 

박태원을 통상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로 부른다. 도시 산업문명에 따른 인간성 상실과 극복을 주요 주제로 하는 서구 모더니즘은 1930년대 구인회라는 문학 동인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 되었다. 당시는 사회주의 예술 단체인 카프(KAPF) 와 같은 경향주의 문학이 판치던 시기인데, 이에 염증을 느낀 일부 작가들이 결성한 단체로 비교적 순수문학을 지향하였다. 기존의 전통과 권위, 이데올로기를 탈피하고 개인의 자의식을 중시하는 이러한 운동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출현했다. 박태원은 물론이고 이효석, 정지용, 김유정, 이상, 유치진 같은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들이 활약했다. 과히 문학의 황금기라 할만하다. 그런데 해방 후 좌우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박태원은 구인회 동료인 이태준과 함께 월북하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있는데 친구 따라 월북했으니 당시의 상황은 참으로 어려웠던 것이리라. 우리가 이들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해금 후인 1990년대 경 이후이니 문학사의 큰 손실인 것만은 틀림없다.

 

 

  © 구보 박태원과 외손자 봉준호

 

요즈음 세계를 떠들썩한 일이 벌어졌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작품상 등 네 개나 수상했다는 소식에 온 시민들이 환호한다. 가뜩이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바람에 온 국민의 가슴이 얼어붙어 있는 상황에다 나라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요즈음에 여간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BTS의 대중음악으로 한류열풍이 온 세계를 휩쓸더니 영화예술 또한 한류열풍에 합세하여 한국 문화 예술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유명세를 타면서 그의 집안 내력이 소개되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가 소설가 박태원이다. 봉준호 감독의 어머니 박소영씨는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로 박태원이 월북했을 때 서울에 남겨졌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에 한 말이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감독 마틴 스콜세이지가 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볼 때부터 대단한 감독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기생충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영화 기생충은 코믹하면서도 진지함이, 익살스러우면서도 기괴함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빈부의 갈등으로 고조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실상과 갈등을 고발하는 탁월한 영화이다. 박태원의 천변풍경1930년대 도시 속 세태풍자를 그렸다면 봉준호의 기생충은 현대판 도시 속 세태 풍자다. 역시 핏줄은 못 속이는가 보다. <> 

 

 

- 에세이스트 장정완

  • 도배방지 이미지

기획 컬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