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장정완 에세이 다섯번째편

안성프리즘 | 기사입력 2019/09/23 [12:58]

농담

장정완 에세이 다섯번째편

안성프리즘 | 입력 : 2019/09/23 [12:58]

당신이 사색(思索)에 빠져있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는 그는 사색(死色)이 되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농담이다. 신림동 고시촌의 한 화장실 벽에 쓰여 있던 낙서라 한다. 위트가 넘치는 말이다. 농담은 단순히 실없이 장난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진담으로만 말하면 너무 분위기가 경직되기에 에둘러서 말하거나 역설적으로 진실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섣부른 농담은 당신을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거나 남의 가슴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런 농담을 우리는 악의적 농담이라고 도 한다. 그런 악의적 농담을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가들이다.

 

원래 언어는 모호하다. 그래서 문학이란 모호한 인생과 모호한 언어가 만나 결혼하는 것이다.“ 라고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블랑쇼는 말한다. 이 모호함 속에 안개같은 인생이 있고 말이 있다. 이 모호함을 헤쳐 나와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농담을 잘 구사하는 사람을 우리는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문명화 될수록 생각은 복잡해지고 이를 표현하는 언어 또한 다의성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삶이 가변적이 될수록 언어는 단순성을 잃고 언어의 의미는 표류하거나 좌초된다. 말해지는 진실은 늘 왜곡되거나 은폐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러나 농담은 즉시적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말을 회복시킨다. 고도의 상징성을 통해 언어를 조작한다는 의미에서, 대화의 함축적이고 즉각적인 사태의 전이를 가져오는 농담은 일종의 언어의 폭발이라 할 수 있다. 여러분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조차도 멋진 농담 한 마디로 그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농담은 늘 말의 경계에 있다. 상대방을 미소 짓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뼈 있는 농담앞에서 우리는 잠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진지한 농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 의미를 찾아낼 시간과 구실이 필요하다. 그것이 농담이 가지는 묘미이고 인간의 마음을 전복시키는 농담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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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점토판에서 재미있는 글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찾아낸 최초 인류의 농담이 아닐까 한다.

“... 걱정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제멋대로다. 정말 앞날이 걱정이다...”

어른들의 눈으로는 젊은이들의 행동이 그저 버릇없고 한심스러워 보여도 인류의 문명은 젊은 세대를 통해 끊임없이 진보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노인들에게 다음 세대를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는 영영 없을 런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인류가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최초의 견해이자 진보적 문명에 대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이것이 농담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리스 최초의 자연철학자 탈레스에게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탈레스는 밤길을 걸으며 하늘의 별을 관찰하고는 했는데 어느 날 그만 웅덩이에 빠져 버렸다. 이것을 본 하녀가 한치 앞도 못 보는 주제에 하늘의 이치를 알려고 하다니 참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는 일식을 예측하기도 했고, 올리브 농사가 풍년이 들것을 예측하여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으며 당대에 유명한 현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기서 하녀의 말은 농담인가 진담인가? 진담으로 걱정 반 조롱 반으로 말했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판명 날 때 하녀의 말은 농담이 되어버린다. 기왕 탈레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하면, 탈레스가 결혼을 하지 않자 어머니가 이제 결혼할 때가 되었으니 결혼하라고 종용하자 탈레스는 아직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한참을 지난 후에 어머니는 탈레스에게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느냐고 다그치자 탈레스는 이미 결혼할 때가 지났다고 대꾸하였다.

 

지금은 좀 유치할지 모르지만 학창시절에 유행했던 유머가 생각난다.

세계 각국의 여행객을 태운 유람선이 항해 중이다. 거기에는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은 물론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도 타고 있었다. 그때 배에서 사람이 물에 빠져 살려 달라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감히 구할 생각을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뛰어들어 가까스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건 뜻밖에도 일본인이었다. 모두가 일본인을 칭송하자 일본인은 자신이 물에 뛰어 든 것은 뒤에서 누가 밀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한 사람을 지적했다. 그러자 지적받은 사람이 갑자기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그땐 그 유머가 왜 그리도 재미있었던지... 치기어린 민족적 자존심을 이런 식으로 회복시키고 싶었다.

 

농담의 대가는 역시 영국의 정치가 원스턴 처칠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수많은 그의 유머와 일화가 전해져 온다.

영국 의회 사상 첫 여성 의원이 된 에스터 부인은 처칠과는 매우 적대적인 관계였다. 처칠은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했다. 그녀가 처칠에게 말했다.

"내가 만약 당신의 아내라면 서슴치 않고 당신이 마실 커피에 독을 타겠어요."

처칠은 태연히 대답했다.

"내가 만약 당신의 남편이라면 서슴치 않고 그 커피를 마시겠소.“

 

힐러리 클링턴에 관한 멋진 농담 하나를 더 소개하면,

힐러리와 클링턴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자 주유소 사장이 나와 힐러리와 포옹을 하며 반긴다. 힐러리와 주유소 사장은 예전에 사귀던 사이였다. 클링턴이 기분이 나빠져 힐러리에게 말했다.

당신이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지금 당신은 주유소 사장 부인이나 하고 있었겠지.” 그러자 힐러리가 대답했다.

그럴리가요? 아마 나와 결혼했다면 저 사람은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걸요.”

 

뼈 있는 농담속에는 언제나 비난과 찬사가 뒤따른다. 인간은 적나라하게 내 보이는 진실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감추어진 진실을 폭로하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말해지는 것은 적당한 순간 한마디의 농담일 뿐이다. 그것은 오직 말로서, 그 기묘한 언어의 포장 속에서 드러내 보일 것을 요구한다.

아마도 가장 심오한 농담은 인생사에 관한 것이고 삶과 죽음에 대한 유희적 언어일 것이다.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이 유명한 묘비명 때문에 버나드 쇼는 죽어서 더욱 유명해졌다. 버나드 쇼는 이 세상이 신의 농담으로 만들어졌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거대한 희극의 무대이고 우리 인간은 한갓 어릿광대처럼 살다가는 것이다.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 속에 포함되어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에서 한 말이다. 작가는 인생을 비극적인 농담으로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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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유희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물과 현상에 부여된 속성을 상징화하고 말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모순적이며 조화롭지 못하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은 늘 두절된다. 일상적 언어는 체험적 진실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때때로 언어적 유희를 즐긴다. 농담은 언어의 다의성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표출하고 때로는 조롱하고 때로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농담처럼 자신의 삶과 생각을 단 한마디로 함축한다는 것보다 멋진 언어적 유희는 없다.

우리는 가장 진지한 농담을 기억하고 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진실을 부정한 법정에서 빠져 나오며 한 말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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