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관지(一以貫之), 나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최동락의 인문학 산책 3

안성프리즘 | 기사입력 2019/09/18 [00:24]

일이관지(一以貫之), 나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최동락의 인문학 산책 3

안성프리즘 | 입력 : 2019/09/18 [00:24]

여름 더위가 물러나니, 하늘이 한결 더 높아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들녘에는 풍요로움이 가득해 지고, 산자락에는 밤송이가 터지고 있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익으면서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삶을 끝내고 근원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고갱의 그림 한 점이 생각납니다. 문명에 대한 회의로 도시 생활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타히티의 자연 속으로 떠났으나, 가난과 질병으로 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유언처럼 남겼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ere are     we going?) Boston Gallery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1980년도의 후반, 출판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무실 근처인 인사동에서 후배인 정동용 시인이 운영하던 시인학교, 당시 뭇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찾아들던 휴식처 같은 곳이었습니다. 저도 수시로 드나들며 안식처로 삼았던 그곳에서 처음으로 시인 천상병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독재에 희생양이 되어,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힘든 삶을 살고 계셨지만, 시의 언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함은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선생님의 귀천(歸天)이라는 시입니다.

 

미움도, 원망도 느낄 수 없는 순수한 달관의 경지입니다. 고갱이 토해낸 절규마저도 관조하게 하는 고요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잠시 머물다 가는 소풍으로 표현한 것은 참으로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날들이 바로 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 소중한 소풍의 시간들이란 시(). 하지만 문득 어느 날,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고 고향집인 하늘로 돌아가게 될 때,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천상병 선생님의 시 귀천(歸天), 가을처럼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부질없이 밖을 향했던 시선을 마음속으로 거둬들이게 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합니다. ‘나는 이 순간 어떻게 살고 있는가?’

 

  © 천재시인 천상병

 

공자(孔子)가 제자인 자공(子貢)과 한가로이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자공은 늘 스승인 공자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비롯한 제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곧바로 답이 나오는 공자의 지식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공이 선생님은 언제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하여 알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하였는데, 공자의 대답은 아주 단순하였습니다.

 

(: 자공의 이름)!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기억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하나로써 (삶의 본질을)꿰뚫은 것이다.(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非與 曰 非也 予 一以貫之.)

 

공자는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자신의 지혜가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로써 자신을 꿰뚫다.)’로 얻게 되었다고 하셨지만, 자공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곧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것(一以貫之)에 있다는 공자의 말을 자공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당시 최고의 부자가 될 뿐만 아니라, 재상(요즘 국무총리 격임)까지 겸하게 되는 출세를 하게 되지만, 일이관지에 공명할 지혜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공자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공자의 제자)!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뚫고 있다(一以貫之)’.증자(曾子: 曾參)는 곧바로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공자(孔子)가 방을 나가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증자가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 뿐이다.(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唯 子出 門人問曰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공부하고 있는 방에 들어오셨다가 나가시면서 불쑥 던진 말씀,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증자는 곧바로 ()’()’라고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그 말의 의미까지 전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관지란 무슨 말씀일까요? ‘()하나, 한결 같다, 한이 없다등의 뜻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 하나에다 의식을 모으는 것이고, “관지(貫之)는 이렇게 모아진 의식으로 한결 같이, 한없이 자신의 마음속으로 몰입시켜 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참선이나 기도·명상과도 같은 방법입니다. 복잡한 일상의 일들을 내려놓으면서, 단순하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은 늘 쉼 없이 선택을 요구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합니다. 증자가 곧바로 이해한 일이관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는 길입니다.

 

()’가운데 중()’자와 마음심()’자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므로, 자신의 마음속을 향해 의식을 몰입시킨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힘, 곧 구심력(求心力)을 키우는 것이 입니다. 구심력은 바로 자신의 주체성을 세우는 일입니다. 구심력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마음은 더욱 고요해지고, 의식은 점점 더 밝아져서, 외적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외적 유혹에 흔들지 않는 밝음이 곧 혜안이고, 지혜입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개인의 창의력도 이러한 몰입의 상태에서 나오는 지혜라고 하였으니, ‘이야말로 자신의 지혜로 자기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하나인 나의 근원을 찾아 몰입해 가면, 모든 존재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용서)같을 여()’자와 마음심()’자가 합해진 글자입니다. 모두가 같은 사람, 모두가 한 몸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고, 실천하는 원심력(遠心力)의 행동이 바로 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서로 연결되고 의지한 채,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공생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듯이,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이웃과 함께, 자연의 변화를 타면서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행동이 의 실천입니다. ‘는 세상을 바라보는 열린 마음의 실천이고, 서로 다른 점들을 이해하는 관용의 실천이고, 한 마음으로 통하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바로 공자가 말씀하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마테복음)는 참사랑이 입니다.

 

  © 안성프리즘

 

가을의 변화가 산과 들의 풍경을 바꾸고 있고, 풍성한 열매들은 다시 자신의 근원을 향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밖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일이관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의 구심력이 깊어질수록 의 원심력이 확장됩니다. 이렇게 하늘이 한없이 맑아지고 있는 가을날, 우리 모두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소풍을 떠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구경하는 축복을 누려 봅시다.

 

2019. 9. 15. 삼각산 아래 관풍재(觀風齋)에서

 

현재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전임강사.

· () 유도회(儒道會)연수원 교수(1982년 개원).

· () 동인(同人)문화원 교수(1992년 개원).

· 풍류(風流)사랑 인문학 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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