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아침

에세이스트 장정완의 문학산책 3편

안성프리즘 | 기사입력 2019/08/29 [09:41]

해변의 아침

에세이스트 장정완의 문학산책 3편

안성프리즘 | 입력 : 2019/08/29 [09:41]

기차는 밤새 달려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토해냈다. 어둠 속에서 정적이 깨지고 한산했던 역전에는 갑자기 인파들로 붐볐다. 부산한 움직임 속에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들이 들리고 모두가 들 뜬 모습으로 바삐 역사를 빠져 나간다. 그러나 여전히 잠이 깨지 않은 찌뿌둥한 표정들, 구겨진 옷매무새, 기지개를 펴는 소리, 미처 챙기지 못한 옷가지를 들쳐 메고 허둥대는 모습들도 보였다. 개중에는 아직도 꿈속에 잠긴 듯 연인의 팔을 꼭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야간열차여행은 그리 긴 여행은 아니었지만 짧은 것만은 아니다. 함께 온전히 밤을 지새운 것이다. 그것을 상기하면 정말 특별해지고 기념해야 할 일이다. 모든 풍경이 잠든 고요한 세상을 지나 한없는 어둠을 뚫고 열차는 달려왔고 함께 온 그대는 조금은 지친 표정으로, 조금은 얼 띤 표정으로 여전히 그녀 곁에 있다. 어둠 속을 달리는 열차에서 깊은 잠을 이룰 수는 없다. 물론 처음 두어 시간은 대화를 나누었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는 야릇한 흥분도 맛보았지만 이내 밤이 깊어 갈수록 몸은 혼곤해져 왔다. 바깥 풍경을 조금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안도하련만 차창 밖은 여전히 칠흑이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이 열차뿐인 것만 같았다. 열차는 맹렬하게 달리는 짐승 같았고 그들은 그 내장 속에 소화되지 않은 이물질 같은 존재로서 남아있다.

불면의 밤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온 세상이 잠들어야 할 시간인데 잠을 이루지 못 했기에 몰려오는 압박감을 고스란히 몸은 견디고 있다. 일종의 폐쇄공포증 같은 것. 어떤 보상을 해 줄 것인가. 옆에 비스듬히 앉아 잠들어 있는 그녀의 체취가 전해온다. 열차는 끊임없이 단조롭게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다. 그녀는 기차를 탈 때만 해도 조금은 들떠있어 명랑하더니 이내 기진해져 혼곤히 잠이 들었다. 나 역시 잠을 자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한 불빛, 낯선 사람들 틈바귀, 비좁은 의자, 무언가 끊임없이 먹어대고 마시면서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

  © 안성프리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눈을 붙이고 꼼짝없이 앉아 있으려니 겹겹으로 몰려오는 생각의 파도를 물리칠 수 없었다. 평소에는 일어나지 않던 상념들의 소요들이 기차의 흔들림에 맞춰 덜거덕거린다. 이미 막혀버리고 잊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쑥 불쑥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 기억 또한 감정의 넝쿨처럼 끈질기게 번식해 가는 모양이다. 어두운 밤이다. 대체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열차는 목적지를 향해 정확히 가고 있지만 기억들은 뒤죽박죽 엉겨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일으키고 급기야 나의 전 생애를 심문하려 한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수록 감정은 우울해진다. 맹목적으로 달려 왔던 삶.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 알 수 없는 생의 의미들, 미망의 순간들,,,, 기쁘고 즐거운 시간도 있었건만 기억은 수렁처럼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이렇게 지쳐갈 즈음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전의 부산한 모습은 잠시 소요 속에 시끌벅적거리더니 이내 잠잠해 졌다. 밖으로 나오자 신선한 공기가 몰려왔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고 희미한 가로등 빛에 골목으로 이어지는 거리의 우중충한 건물들은 이곳이 낯선 곳임을 깨닫게 했다. 발바닥에서 서걱거리는 모래 가루를 느끼며 역사를 빠져 나가자 어둠에 깔린 옅은 안개는 우리들의 종적을 이내 감싸버린다. 우리는 무리지어 어디인가에 홀린 듯 긴 대열을 이루며 걸음을 옮겼다. 비릿한 바닷가 내음만이 어둠 속에서 우리의 발길을 이끌었다. 여전히 한 밤중이었고 달라진 것은 없었고, 역전 근처 늘어선 음식점들에서 호객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성프리즘


사람들은 해변 가에 늘어서서 희붐한 어둠 속에서 아침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마치 이 세상 최초로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듯이. 저쪽 끝이 바다라는데 아직은 수평선조차 그 윤곽을 보여주지 않는다. 텅 빈 허공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몰려왔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파도소리는 다소의 청량감과 신선함을 주었다. 침묵과 명상과 고요가 점령해 버린 땅에서 그들은 하늘을 앙모하듯 사위가 밝기만을 기다렸다. 오직 한 곳만을 응시하며 몽상에 사로잡힌 군상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풍경이 변해 간다. 어떤 압도된 힘에 의해 주위가 밝아 왔다. 어둠은 칼날처럼 쪼개지며 날카롭고 짙푸른 색으로 변해갔다. 모래사장을 잠식하는 파도자락이 남보라 빛으로 감돌더니 이내 시퍼런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아득한 저 너머로 긴 수평선의 흰 빛줄기가 그어졌다. 하늘은 여전히 검푸르렀고 깊은 바다는 그 자태를 어둠 속에 숨기고 있었지만 우리는 곧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평선 끝자락 한 지점이 붉게 물들면서 찬란한 태양이 물 위로 솟아올랐다. 누군가의 입에서 !”하는 탄성소리가 들리자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세상이 새롭게 탄생한다는 경험이 그런 것일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일체의 경험 속에 있다. 과거와 미래도 없고 오직 현존만이 있다. 지리멸렬한 삶들, 자신의 과오도, 욕망도, 회환도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연과 하나 된 존재만이 있고 찰라 속에서 비롯된 거대한 드라마,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전개되어지는 단 하나의 시점만이 있을 뿐이다. 짧은 순간이었다. 태양은 바다 위에서 불쑥 솟구치더니 금 새 허공위로 떠올라 세상을 환히 비춘다. 사물들의 형체가 뚜렷해지고 붉은 기운은 푸른빛으로 바뀌면서 안개와 구름은 흩어진다. 조금 전의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백사장은 햇살로 눈부시게 빛나고 바다는 예전처럼 푸르름을 되찾았다. 이 장엄한 순간을 경험하면서 과연 우리는 새로워진 것일까?

나는 옆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을 흘낏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수에 잠긴 그녀의 표정, 함께했던 세월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녀의 입을 통해 그녀의 과거와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이야기들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모르는 것은 현재의 그녀의 마음일 뿐이다. 문득 얼마 전 그녀가 울먹이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어요.”

그날 우리는 평소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때 요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어머니의 임종을 알렸다. 무남독녀 외동딸. 그녀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오랜 시간 방치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유들. 언제나 낯선 침상에서 어머니는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가 집에 데려가 주길 원했다.

  © 안성프리즘

 

그녀는 상념에 잠겨 저만치 앞서 해변 가를 거닐고 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 걷고 있다. 잔잔한 파도자락에 긴 백사장이 반월처럼 펼쳐져 있다. 태양은 벌써 높이 떠올랐고 안개는 걷혔고 하늘은 맑았으며 해변은 늘 그랬던 것처럼 투명하고 밝고 싱그러웠다. 나는 모래사장에 파묻혀 있던 소라고둥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우둘두툴한 껍질 속에 나선형으로 파여 있는 깊은 구멍. 태고의 모습 그대로, 조물주가 은하계 넘어 또 다른 은하계를 만들려고 남겨둔 작은 집 같은 것. 우주의 모형 같은 것.

나는 문득 깨달았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잊기 위해 그렇게도 가슴 저리게 새로운 날을 기대하는지.

 

 

- 에세이스트 장정완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