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

장정완 기획 컬럼 2편

안성프리즘 | 기사입력 2019/07/27 [21:44]

달인

장정완 기획 컬럼 2편

안성프리즘 | 입력 : 2019/07/27 [21:44]

 

이 세상에 어찌 쉬운 일이 있을까마는 아파트에서 화초를 키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원에 심은 꽃들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건만 아파트 베란다의 꽃들은 여간 세심한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금세 시들거나 죽어버린다. 햇빛이 잘 안 들고 건조해서 그런가? 그렇게 죽어간 꽃들이 상당히 많다. 그럴 때 마다 인생을 잘 못 살아 꽃 하나 제대로 가꾸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꽃이 죽어 화분이 치워지고 자리가 비게 되면 이내 나는 동네 근처 화원으로 달려가곤 했다. 백운호수로 난 대로변에는 화원들이 죽 늘어서 있고 그곳에는 백화만발, 수많은 꽃들이 사시사철 진열되어 있다. 꽃들이 만발한 화원을 지나가면 괜히 기분이 상쾌해진다. 꽃들은 하나같이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이 화원을 들랑거리다가 이내 한 주인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오십대 중년의 남자로 아침나절에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부치고 늘 상 길가에 늘어놓은 화분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내가 화분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꽃 이름을 묻자 그가 일일이 대답을 해준다. “이것은 헬레니움, 이것은 칼랑코에, 저것은 제프스 블루, 마그누스, 빈카....” 세상에나 온통 외국어 이름들이다. 하기야 몇 몇 토종 꽃들은 대충 알기 때문에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는 막힘없이 잘 답해 준다. 어느 빨간 꽃 앞에 서서 맘에 들어 했더니이것은 시클라멘입니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이고 앵초목과로 겨울에서 봄철 내내 꽃이 피죠. 비교적 잘 자라기에 아파트에서 키우기 적당합니다.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좋은 곳이면 모두 좋아요. 생육 온도가 20전후이기 때문에 한여름 고온에서는 50%정도 차광을 해주셔야 하고, 겨울에는 얼어 죽지 않도록 주의하면 해마다 꽃이 핍니다. 화분의 겉흙이 완전히 말랐을 때 물을 주시고, 잎사귀가 쳐지거나 힘이 없을 때는 지체하지 마시고 물을 흠뻑 주면 금세 파릇파릇하게 살아납니다. 비료는 관엽 식물용 고형 비료나 액비를 주는데 봄, 가을에 한 번씩만 생장상태를 봐가면서 추가하시면 됩니다...” 그는 마치 백과사전처럼 좔좔 읊어댔다.

그리고 덧붙여 아파트에서 꽃이 잘 죽는 이유로는 물을 너무 자주 주어 곯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한 통풍이 잘 안되면 꽃에 곰팡이 균들이 번식하거나 병에 걸려 시들어 죽는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바람을 잘 쏘이라는 얘기인데 풍상의 시련을 견뎌야만 튼실해지는 게 모든 세상 만물의 이치란다. 꽃이 잘 죽는 이유가 과잉보호에 과잉애정이라면 그리 할 말이 없어진다. 요즈음에는 모두 다 그렇게 양육하니까. 나는 설명을 들으며 혹시 그가 화초의 달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TV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꽤 오랜 기간 방영하는 걸 보니 우리나라에는 달인들이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시장 통에서 음식 그릇을 산더미처럼 머리에 이고 인파를 누비는 배달의 달인, 수북이 쌓인 지폐를 원하는 액수대로 정확히 잡아내는 지폐 달인, 물건을 저울에 올려놓은 것처럼 손으로 들어만 봐도 무게를 정확히 알아맞히는 중량의 달인 등,,, 그러고 보면 눈 감고도 떡 크기가 정확했던 한석봉의 어머니는 떡 썰기의 달인이고, 새로 만든 음식을 갖다 놔도 뭐가 들어갔는지 잘 알아맞히는 백종원은 맛의 달인이라 불러야 하겠다. 고수라 하기도 하고 장인, 명인이라고 불리어지기도 하는 달인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한 가지 일에 성심을 다해 오랜 기간 전념하다 보면 모두 달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달인이 되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똑같은 세월을 함께 똑같은 일을 했어도 누군가는 달인의 칭호를 얻어도 손색이 없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달인의 사전적 정의는 널리 사물의 이치에 정통한 사람이나 특정 분야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널리 사물의 이치에 정통한 사람은 드물고 특정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만 있다. 세상이 복잡해져서 그런가 지식과 지혜의 분리가 생겼고, 기예와 인격의 분리가 생겼다. 달인이란 말은 흔히 생활의 달인이라 부르고, 고수란 말은 숨은 고수란 말로 접두어를 붙여 부르는 것을 보면 확실히 대가라던가 거장이라는 말과 달리 서민적이다. 즉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서민들 속에는 언제나 달인이 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이름 없는 서민들은 언제나 달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태란 말이기도 하다.

원시인들은 모두 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말이 있다. 원시인들은 사냥감을 따라 돌아다녀야 하기에 어떤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지 않으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위에서 자체 해결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주위환경과 여건, 동물과 식물의 습성, 기후변화, 적들의 동태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들은 어떤 징후를 잘 포착하고 의미부여를 했다.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느낌에 따라 방향성을 타진한다. 어쩌면 현대 인류가 상실한 초감각적인 지각능력과 탁월한 생존능력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원시 부족사회의 일원들은 한정된 자료와 용구를 가지고 최고의 솜씨를 발휘해야 하는데, 어떤 조건 속에서도 사물들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끌어내는 기예를 브리콜라쥬라고 했다.

 

장자(壯者)에도 달인 이야기가 나온다. <포정해우(庖丁解牛): 포정의 소 잡는 이야기>를 보면 달인이란 어떤 존재인지 잘 설명하고 있다. 포정이라는 백정은 얼마나 칼질을 잘하는지 그의 손놀림은 리드미컬하면서 막힘이 없다. 순식간에 소의 살과 뼈를 분리하고 해체해 놓는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문혜군이 탄성을 지르며 칭찬하자, 포정이 말하기를 제가 즐기는 것은 도()인데 기술을 통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감각의 작용이 아닌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따라 뼈와 살 사이의 간격에 칼을 넣어 자연스럽게 갈라갑니다.... 그러기에 19년이나 써도 칼날은 금방 숫돌에 간 듯 잘 드는 것입니다...”

<포정해우(庖丁解牛)> 는 기술적인 측면을 넘어서 득도의 경지를 이룬다는 소위 기기득도(棄技得道)’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무슨 일을 통해서건 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예를 버려야 한다. 감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아니 물고기가 물을 잊듯 솔개가 바람을 잊듯 주체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장자의 궁극적 개념인 도에 통한다는 말은 곧 우주와 만물의 근원을 내가 체득하고 실현하여 자유와 해방의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다.

 

현대사회를 일컬어 정보 혁명의 시대니, 통신 혁명의 시대, 지식혁명의 시대라고도 한다. 곧이어 4차 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인공지능, 사이보그, 로봇의 시대가 개막하고 있다. 클라우드니, 빅데이타니 하면서 이름도 생소한 용어들이 정보 지식 사회에 군림하여 우리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고 좌지우지 한다. 지하철에 타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뭘 하는지 가끔 궁금해져 흘긋 들여다보면 어떤 사람은 동영상을, 어떤 사람은 게임을, 어떤 사람은 운동경기를, 어떤 사람은 인터넷 쇼핑을, 어떤 이는 카톡 자판을 열심히 두드린다. 얼마나 빨리 두드리는지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가히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다.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고 손가락만 두드리면 척척 모든 정보들을 한 번에 끄집어낼 수 있다. 어찌 그것뿐인가. SNS를 통해 정보는 순식간에 지구상으로 퍼져나간다. 정보와 지식에 관한한 우리 현대인은 모두 달인들이다. 요즈음엔 간첩이 없다고 한다. 간첩이란 적국에 침투하여 필요한 군사정보나 유용한 정보를 알아내는 존재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적국에 잠입하여 목숨 걸고 활동을 하지 않아도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니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전지전능해지는 인간에게도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지식을 통한 해방감이 아닌 우울증이나 강박증 환자들로 넘쳐난다. 그 강박감은 주위환경이 너무 복잡해져 본인 스스로는 도저히 알지 못할뿐더러, 거대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시스템의 감시 하에 우리 존재가 발가벗겨져 있다는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거대한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왜소해진 인간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공허함에 시달린다. 믿고 의지할 존재도 없을뿐더러 자신들의 운명의 좌표를 상실했으며 탈출구 또한 알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사회적 물질적 풍요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며, 더 이상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시인들이 생존의 좌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장자의 시대는 도()의 좌표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인은 물질의 좌표를 가지고 있다. 모든 가치 판단이 돈과 물질로 좌우되니 세상이 점점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길을 잃지 않으려면 물질이 아닌 정신의 좌표를 새로 설정해야 할 일이다. 행복이란 주위환경이나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정이다. 행복이야말로 현대인이 새로 장착해야할 정신적 네비게이션이다.

 

- 에세이스트 장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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